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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유도이야기

유도의 세계적인 전파의 시작

by 유니네나라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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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유도를 사랑했던 '가노 지고로' 현재 유도에 뜻을 둔 선수는 전 세계에 있으며 올림픽 정식 종목이기도 합니다. 유도가 정식 종목이 되기까지의 길이나 세계의 유도 사정 등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도쿄 개최가 결정된 후에도'가노 지고로'는 곧바로 일본으로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아테네 올림피아에서 쿠베르탕 남작 위령제에 참석해 이탈리아,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래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만나 일본 올림픽 개최에 동의한 취지를 감사하는 동시에 도쿄 대회에는 많은 선수를 참가시켜 줄 것을 의뢰했습니다.'예'에서 시작하여 '예'로 끝나는 유도의 정신을 중시하는 '가노 지고로' 철학이 고인의 행동입니다.
예를 갖추어 겨우 귀국길에 오른 배 안에서 '가노 지고로'는 모국의 땅을 밟지도 못하고 죽고 맙니다. 고령인 데다 긴 여행의 피로 때문에 폐렴을 일으켜 버린 것입니다.
많은 노력으로 개최를 쟁취한 대망의 도쿄 올림픽을 보지 못한 채 지고로는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유도의 모양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임종 말까지 유도를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도의 세계적인 발자취

'가노 지고로' 등의 노력으로 1939년(쇼와 14년) 개최 예정이었던 제12회 도쿄 올림픽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취소되고 맙니다.
15년간 계속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점령군이 주둔하고 유도, 검도 등은 금지되어 올림픽으로 가는 길은 막힌 듯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무도 정신이 맥진하게 흐르는 유도는 '가노 지고로' 교수가 지도한 강도관의 문 하달에 의해 은밀히 계승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48년(쇼와 23년)에는 전 일본 유도 선수권 대회, 전국 경찰관 유도 대회가 열렸고 이듬해 전 일본 유도 연맹이 결성되었습니다. 쇼와 25년에는, 학교 유도도 허가되어 전국 고교 체육 연맹에 유도부가 발족, 게다가 전 일본 학생 유도 연맹 결성과 유도는 탄력을 받아 전국적인 대회가 매년 개최되기까지 되었습니다.

세계의 유도

강도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뿌린 유도 씨앗은 50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해외에서도 멋지게 피었습니다. 폐지된 줄 알았던 해외 유도는 일본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고 1948년(쇼와 23년)에는 유럽 유도연맹이 결성되었습니다.
또한 1952년(쇼와 27년)에는 유럽 유도연맹은 국제유도연맹이 되어 세계의 밑거름이 되는 유도 조직이 갖추어졌습니다. 일본도 가입하고 국제유도연맹 주최 기념할만한 제1회 세계 유도선수권대회는 도쿄에서 개최되어 21개국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해외 유도는 더욱 발전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가노 지고로'가 사망한 지 26년째인 1961년 IOC에서 유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거론됩니다. 1964년(쇼와 39년) 올림픽이 염원이었던 도쿄에서 개최되어 처음으로 유도가 경기 종목에 추가되었습니다.

전후의 해외로의 보급은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어 1956(쇼와 31)년에는 제1회 세계 유도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어 1964(쇼와 39)년의 도쿄 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남자의 정식 종목으로서 채용되었습니다.

국제유도연맹 출범 60여 년이 지나 유도연맹 회원국도 200여 개국이 됐고 세계 유도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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